[2013/서울신문-시조] 송필국 시인

Posted 2014. 11. 25. 11:52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 당선작]

 

번지점프

-해송 현애懸崖



한 점 깃털이 되어

허공 속을 떠돌다가

치솟은 바위틈에 밀려든 솔씨 하나

서릿발

등받이 삼아 웅크리고 잠이 든다


산까치 하품소리

따사로운 햇살 들어

밤이슬에 목을 축인 부엽토 후비작대며

아찔한 난간마루에

고개 삐죽 내민다


버거운 짐 걸머메고 넘어지다 일어서고

더러는 무릎 찧어

허옇게 아문 사리

뒤틀려 꼬인 몸뚱이 벼랑 끝에 매달린다


떨어질듯 되감아 오른 

힘줄 선 저 용틀음

눈 이불 솔잎치마 옹골찬 솔방울이

씨방 속

온기를 품어 천년 세월 버티고 있다.


* 현애 : 벼랑에 붙어 뿌리보다 낮게 기울어져 자라는 나무.


[당선 소감] "시조 속에 더 넓은 세상 담고 싶어"

 


해마다 연말이면 열병을 앓곤 했다. 밤을 밝혀 글을 써도 그게 아니요, 다시 개칠을 해봐도 아닌 시조를 쓰느라 그랬고, 그 글 보내놓고 당선 소식을 기다리느라 더욱 그랬다. 그래도 끝내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적공을 드린 것이 결국 오늘에 이르게 된 것 같아 너무 기쁘다.

 

그날도 어느 야외 주차장에서 아내를 기다리고 있었다. 꽁꽁 언 하늘에는 듬성듬성 별이 뜨고 있었고 그때 그 별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은 것이다. 기다리던 사람이 왔고 우린 서로 꼭 껴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기야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그냥 글이 좋아 글을 썼다. 시나리오로 시작해서 소설로, 다시 시로, 장르 속을 떠돌며 추천도 받아보고 신인 문학상도 타보곤 했다. 그러다 뒤늦게 빠져든 것이 우리 정형시 시조다. 항상 모자라거나 넘쳐나거나 아니면 꽉 조이거나 헐렁하거나 하던 그 매력에.

 

좋아하는 책을 많이 읽고 글도 좀 써보자고 일찍이 귀농을 했다. 하지만 어디 농촌 생활이 선비 타령이나 하고 유유자적할 여유가 있었던가. 온실작물이 주업이 되어 버린 지금 낮에는 시설 작물과 씨름을 하고, 밤이면 늘 제멋대로인 시조를 죽기 살기로 껴안고 살았다.

 

작은 렌즈를 통해 우주를 다 올려다 볼 수 있는 천체 망원경같이 앞으로 시조 속에 더 넓은 세상을 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생각이다. 늘 시조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고운 정 미운 정 들여가며.

 

오늘 이 영광스러운 지면을 열어주신 서울신문사와 당선이라는 큰 은혜를 베풀어주신 이근배, 한분순 두 분 심사위원님께 고개 숙여 고맙다는 말씀 드린다.

 

처음 시조의 길을 열어 주신 윤금초 교수님, 그리고 늘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봐 주신 주위의 모든 분들께도 감사드린다


[심사평]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표현 돋보여"



오래 담근질해 온 우리의 모국어가 숨겨진 가락을 찾아내 시조의 형식으로 새롭게 태어날 때 그 울림은 크고 받아들이는 느낌은 더욱 깊어진다.

 

온전한 우리의 시인 시조가 형식이라는 굴레를 쓰고서도 어쩌면 이렇게 자유로울 수 있을까하는 물음 앞에는 오히려 더 거세고 모질게 파고드는 이 땅의 시재’(詩才)들이 있기 때문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당선권에 올라오는 작품들이 늘어가고 있는 만큼 올해도 열기는 높았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시적 오브제를 역사성이 담긴 사람이나 고적, 유물에서 찾는 흐름이 있다는 것이다. 작품의 중량감을 더하는 것은 좋으나 신춘문예의 한 패턴으로 인식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당선작 번지점프-해송현애’(송필국)는 바닷가 절벽에 붙어 사는 키가 자라지 못한 늙은 소나무에 기대어 세상의 바람과 서리에 맞서는 인간의 생명력을 그려내고 있다. “버거운 짐 걸머메고 넘어지다 일어서고” “떨어질듯 되감아 오른 힘줄선 저 용틀임에서 짙은 삶의 진액이 흘러나온다. “솔씨하나에서 천년의 세월 버티고까지 4수의 구성과 의미의 배열이 잘 짜여지고 낱말 고르기와 꾸밈도 날이 서 있고 맵차다. 앞으로 시조의 나아갈 바에 큰 보탬이 되리라 믿는다. 끝까지 겨룬 작품으로 알츠하이머’(박복영), ‘경을치다’(김성배), ‘막사발 또는 행성’(송정훈), ‘겨울 소리를 보다’(김희동) 등이 각기 다른 감성과 개성적인 수사로 놓치기 아까웠음을 밝혀 둔다. 정진을 빈다.


심사위원한분순(시조시인·왼쪽), 이근배(시조시인)

 

송필국 시인


▷ 경북 칠곡군 북삼읍 출생

▷ 1973년 영화잡지 시나리오 공모 2회 추천 완료

▷중앙시조백일장 월말 장원

▷ 201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이메일주소 : songpilguk@hanmail.net


당선 소감 및 심사평 출처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30101037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