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동아일보] 이병국 시인

Posted 2014. 11. 25. 11:46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가난한 오늘



검지손가락 첫마디가 잘려 나갔지만 아프진 않았다. 다만 그곳에서 자란 꽃나무가 무거워 허리를 펼 수 없었다. 사방에 흩어 놓은 햇볕에 머리가 헐었다. 바랜 눈으로 바라보는 앞은 여전히 형태를 지니지 못했다.


발등 위로 그들의 그림자가 지나간다. 망막에 맺힌 먼 길로 뒷모습이 아른거린다. 나는 허리를 펴지 못한다. 두 다리는 여백이 힘겹다.


연필로 그린 햇볕이 달력 같은 얼굴로 피어 있다. 뒤통수는 아무말도 없었지만 양손 가득 길을 쥔 네가 흩날린다. 뒷걸음치는 그림 자가 꽃나무를 삼킨다. 배는 고프지 않았다.


꽃이 떨어진다.

 


[당선 소감] "신문에 제 시가 놓이게 된다니 마음에 창 하나 빛나게 되네요"


 


대문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창이 나 있었습니다. 늘 한쪽 창의 불이 꺼져 있기를 바라며 집으로 향했던 때가 있습니다. 어두운 방에 불을 켭니다. 그렇게 십여 년이 흘렀고 빈방에서 저와 아버지에 대한 시를 씁니다. 월미도 유람선에서 쓴 시를 교실 뒷벽에 붙여놓았던 고등학교 2학년에서 어느덧 미끄러져 서른을 훌쩍 넘겼습니다. 신문에 제가 쓴 시가 놓이게 된다니 제 마음에 창 하나가 밝게 빛나게 되네요.

 

심사위원님들께 감사 인사 드립니다. 올해 생일이 (양력으로 치면) 11일인데, 생일 선물을 너무 거창하게 받네요. 밖에 내놓은 아들 걱정하며 노심초사하는 어머니, 그 곁에 함께하는 분당에 계신 아버지께도 감사 드려요. 최원식 선생님, 김명인 선생님을 비롯한 인하대학교, 대학원 선생님들과 동문들께도 감사합니다. 탁경순 선생님, 꼭 찾아뵐게요. 그리고 지금 옆에서 절 응원하고 같이 웃어주는 그녀, 고마워요.

 

그저 말 많은 선배에서 그래도 신춘문예 당선된 선배로 남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가슴을 쓸어내리네요. ‘멋진수요일’ ‘청하’ ‘시선’. 대학 때 만난 학회들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제가 있었을까요. 숱한 세미나와 술자리들이 모두 기억에 남습니다. 그 곁을 함께한 선후배 모두 고맙습니다. 이제 즐겁게 시, 쓰겠습니다.

 

[심사평] "가난에 형상을 부여하는 힘최고 작품에 대한 설레는 기대"

 


통념을 깨는 상징을 찾아라, 감각의 명증성(明證性)을 보여라, 생명의 도약에 공감하라, 세계의 찰나를 경이로써 보여주라. 좋은 시의 덕목으로 꼽을 만한 것들이다. 무엇보다도 껍질을 깨라! 도약하는 힘을 보여라! 마치 알맹이의 과잉에 못 이겨 반쯤 벌어진 단단한 석류들이 그렇듯이. “제가 발견한 것들의 힘에 겨워 파열하고, 사물의 새로움과 내면의 고매함을 융합하며 붉은 보석이 밖으로 터져 나온다.(발레리의 시 석류들에서 일부 인용) 상상력은 늘 그렇게 독자를 익숙한 것들에 대한 놀라운 개안(開眼)으로 이끈다.

 

이모의 가까운 해변’ ‘골목을 들어올리는 것들’ ‘향리의 저녁 일지’ ‘발의 원주율’ ‘어제의 인사’ ‘끌어안는 손’ ‘오늘 너의 이름은 눈’ ‘친구들’ ‘가난한 오늘’ ‘迷路庭園’ ‘밀의 기원’ ‘꽃 앞의 계절등을 최종심에서 읽었는데, 그것은 개성과 환유의 백가쟁명(百家爭鳴) 속에서 무르익어 스스로 내면을 깨고 터져 나오는 시를 찾는 일이다. 익숙한 서정을 찾기 힘든 대신에 낯선 감각과 의도된 착란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흐름은 주목할 만했다.

 

우리는 서너 편의 시를 손에 쥐고 오래 망설였다. ‘가난한 오늘을 두 시간이 훌쩍 넘는 고심 끝에 골랐다. 신체 말단이 잘리고 헐고 바랜 자는 상처 받은 자이고, 그 상처는 가난의 흔적일 것이다. 일절 엄살이 없다. 아픔을 과시하는 헤픔을 절제하고 가난에 형상을 부여하는 힘은 정신의 야무짐에서 나온다. 시구와 시구 사이의 여백이 그 시적 물증이다. 수사가 덜 화사하고 주제가 소박했지만 아픔과 미망에 대한 표현의 간결함에서 사물에 감응하는 시인의 정직과 내핍의 염결성을 느꼈고, 그것에 깊이 공감했다. 이 시인의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지지 않은 게 분명하다. 지금보다 더 좋은 시를 쓸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이 우리를 설레게 한다.

 

심사위원장석주장석남 시인

 

이병국 시인


▷ 1980년 인천 강화군 출생 

▷ 인하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 인하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수료 

▷ 201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당선 소감 및 심사평 출처

http://news.donga.com/3/all/20130101/51977772/1

http://news.donga.com/3/all/20130101/519777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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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세계일보] 신은숙 시인

Posted 2014. 11. 25. 11:46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히말라야시다



나무는 그늘 속에 블랙홀을 숨기고 있지

 

수백 겹 나이테를 걸친 히말라야시다 한 그루

육중한 그늘이 초등학교 운동장을 갉아먹고 있다

 

흰눈 쌓인 히말라야 갈망이라도 하듯 거대한 화살표

세월 지날수록 짙어가는 초록은 시간을 삼킨 블랙홀의 아가리다

 

빨아들이는 건 순식간인지도 모르지, 그 속으로

 

구름다리 건너던 갈래머리 아이도 사라지고

수다 떨던 소녀들도 치마 주름 속으로 사라지고

유모차 끌던 아기엄마도 사라지고

반짝이던 날들의 만국기, 교장 선생님의 긴 훈화도 사라지고

 

삭은 거미줄 어스름 골목 지나올 때

아무리 걸어도 생은 막다른 골목을 벗어나지 못할 때

부싯돌 꺼내듯 히말라야시다 그 이름 나직이 불러본다

멀어도 가깝고 으스러져도 사라지지 않는 그늘이 바람 막는 병풍처럼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다

 

해마다 굵어지고 짙어지는 저 아가리들

쿡쿡 찌르고 찌르면 외계서 온 모스부호처럼 떠돌다 가는 것들

멍든 하늘을 떠받들고 선 나무의 들숨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삼켜지지 않는 그늘 속엔 되새떼 무리들

그림자 하나씩 물고 석양 저편으로 날아오른다 



[당선 소감] "유리알 닦듯 다시 태어나는 마음으로 정진"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한 지구 멸망의 날,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지구는 저녁까지 안녕했지만 그 순간 저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떠올랐습니다. 시를 써 온 저와 그 깊은 절망에 대한 멸망을 보았습니다. 또 다른 멸망 앞에서 새로운 우주가 열리듯 오늘 저 밤하늘 너머로 사라지는 유성 하나에도 남다른 눈빛 하나 건넵니다.

 

필사하던 밤들을 생각합니다. 고급 독자로 시 읽는 행복감을 누리는 게 차라리 편할진대 시를 쓰겠다고 덤비는 순간부터 마음은 어두운 동굴을 혼자 걷고 있었습니다.

 

덜컥 당선이 되고 보니 기쁨에 앞서 두려움이 밀려옵니다.

 

시를 쓰면서 견뎌야 할 고독과 현실 앞에서 다시 태어나는 마음으로 정진하겠습니다. 제게 시는 마음으로 읽는 세상입니다. 그 안에 새소리 바람소리 깃들 수 있도록 마음을 유리알처럼 잘 닦아 놓겠습니다. 낮은 자세로 이름 없는 사물들을 사랑하고 살피겠습니다. 좋은 시를 쓰는 시인이 되고 싶습니다. 욕심이 있다면 단 하나 그것입니다.

 

고마운 분들이 많습니다. 먼저 부족한 작품을 뽑아주신 오세영, 강은교 심사위원께 큰절 올립니다. 묵묵히 지켜봐준 가족들 그리고 히말라야시다가 있는 초등학교 앞에 사시는 엄마, 사랑합니다. 물방울의 힘을 알게 해주신 정병근 시인님 감사드립니다. 경희사이버대 김기택 교수님을 비롯하여 여러 교수님들, 학우들, 그리고 사랑하는 친구 숙희와 진경에게도 따스한 마음을 보냅니다. 또 저를 알고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과 이 기쁨 함께 나누겠습니다. 마음의 빚은 좋은 시를 쓰는 것으로 보답 드리겠습니다. 이제 조용히 히말라야시다에게로 가서 조금만 울고 싶습니다.

 

[심사평] "신선한 상상력·미학적 논리 통해 세계 재해석"

 


예심을 거쳐 올라온 스물여섯 분의 작품을 놓고 심사숙의한 끝에 두 심사위원은 이의 없이 신은숙의 히말라야시다를 당선작으로 뽑는다. 구조적 완결성과 언어적 진솔성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시인이 한 특별한 사물의 인식에서 촉발된 신선한 상상력과 그 상상력의 미학적 논리를 통해 이 세계를 새롭게 재해석해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이 세계란 하나의 큰 학교이며 삶은 그곳에서 이수해야 하는 일종의 학습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 학습은 학교 운동장 한 켠에 말 없이 큰 그림자를 드리우고 서 있는 히말라야시다의 존재론적 의미와 같은 것이 되지 않고서는 일상성을 탈피할 수 없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 시가 말하고자 하는 바 생의 진정한 완성이란 히말라야시다의 나뭇가지에서 하늘로 날아오르는 되새 떼의 비상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당선작이 요즘 우리는 간과하고 있으나 시가 지향해야 될 이상을 소중하게 지키고 신선하게 형상화하려 노력한 점은 높이 살 만하다. 상상력에 대한 믿음, 언어적 소통에 대한 가치 부여, 미학성과 철학성의 적절한 조화 등이 그것이다. 오늘 우리 시단이 소통 부재의 언어유희나 정신분열적 사유의 독백 같은 시들로 오염되고 있어 더 그러하다. 본심에 오른 작품 과반수도 이 같은 경향에서 벗어나지 못해 씁쓸했다.

 

마지막까지 논의되다가 탈락한 작품으로 이시언의 유리창의 파리는 형상성이나 시상 전개에서 재능을 보여줬으나 상상력이 단순하고 독자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약했다. 구한의 노인목경건조공법은 묘사력과 수사가 탁월하고 언어의 밀도도 나무랄 데 없으나 시상의 비약이 심했고 대상을 단지 묘사해 보여주는 수준을 탈피하지 못한 게 흠이었다.


심사위원) 오세영·강은교

 


신은숙 시인


▷ 1970년 강원 양양 출생

▷ 강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재학중

▷ 201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이메일주소 : shin0478@naver.com


당선 소감 및 심사평 출처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2/12/31/2012123102256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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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매일신문] 김지명 시인

Posted 2014. 11. 25. 11:45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쇼펜하우어 필경사



안개 낀 풍경이 나를 점령 한다

가능한 이성을 다해 착해지려한다

배수진을 친 곳에 야생 골짜기라고 쓴다

가시덤불 속에 붉은 볕이 흩어져 있다

산양이 혀를 거두어 절벽을 오른다

숨을 모은 안개가 물방울 탄환을 쏜다

적막을 디딘 새들만이 소음을 경청한다

저녁 숲이 방언을 흘려보낸다

무릎 꿇은 개가 마른 뼈를 깨물어댄다

절벽 한 쪽이 절개되고

창자 같은 도랑이 넓어진다

사마귀 날개가 짙어진다

산봉우리 몇 개가 북쪽으로 옮겨간다

초록에서 트림 냄새가 난다

밤마다 낮은 거래 되고

낮이 초록을 흥정하는 동안

멀리 안광이 흔들린다

흘레붙은 개가 신음을 흘린다

당신이 자서전에서 외출하고 있다


[당선 소감] "시의 영토에 첫 발자국을 만들며"



꿈 높이 구두를 갈아 신은 아침 같았다. 불현듯 다가온 당신이 동굴 밖에 인형 하나를 그리며 소란했다. 당신의 소리 없는 노래를, 안무 없는 춤을, 감정 없는 사랑을, 동굴 속 어둠을 빌려 수없이 적었다. 당신과 내가 짝짝이 신발이란 걸 알아차린 어느 날, 당신은 떠났다.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이 호흡인 나날을 보냈다. 불안은 짐승 여럿이 사는 움막에서 동거했다. 침묵으로 수태 기간을 보내고 당신을 찾아 나선다. 당신이 날 알아볼 줄 알았다. 꿈 높이 구두로 능동의 영토에 첫 발자국을 만든다. 이제 또 다른 불안을 내 허파에 기른다.

 

모험할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멀리 볼 수 있는 안목과 죽음을 담보로 시작에 임해야 한다고 가르쳐주신 선생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무작정 시를 좋아하던 설렘을 어깨 힘줄로 길러 준 선목문학회, 에이스동인 혜경, 정현, 성진에게 고마운 마음 전한다. 끝으로 오랫동안 후견인으로 지켜봐 준 남편과 딸에게 기나긴 고마움을 표한다.

 


[심사평] "해마다 시 쓰기 열정 많아 향후 발전 가능성에 무게"


     


예심을 통과한 열네 분의 작품들을 선자들이 숙독하고 논의했으나, 아쉽게도 올해엔 한눈에 띄는 당선작을 찾지 못했다. 전반적으로 일정한 수준의 기본기는 갖췄으나, 너머에 이르도록 끌고 가거나 들어 올리는 힘을 내재한 시편을 찾아내기란 꽤나 지난한 일이었다. 그러한 추동력이란 삶을 바라보는 서정적 진정성의 관점에서는 물론이려니와 언어 자체가 직조해내는 미묘한 아우라를 통해서도 발현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최종적으로 네 분의 작품들이 집중 숙고되었는데, 김지명의 쇼펜하우어 필경사’, 지연식의 가금의 서’, 박은선의 흔적 하나’, 이도은의 엄마는 외계인이 그것들이다. ‘가금의 서는 가장 활달한 지적 실험정신과 개성 있는 텍스트적 상상력을 보여주어 주목되었는데, 과유불급이랄까 시에 녹아들지 못한 생경한 언술이나 비유들이 흠결로 드러나 완성도라는 점에서 아쉬웠다. ‘흔적 하나는 창문 틈에 죽은 곤충의 시체를 화자로 한 묘사적 상상력이 진정성에 닿아있어 끝까지 고려되었지만, 군더더기라 할 언술들이 많아 정련미가 부족했다. ‘엄마는 외계인은 동화적 상상력이라 할 나름의 발성법을 갖고 있어 발전 가능성이 보였으나, 좀 더 웅숭깊은 시선과 시적 사유의 깊이와 넓이를 더해주기를 바란다.

 

고심 끝에 당선작 없음까지 고려되었으나, 해마다 시 쓰기의 열정을 불태운 투고자들의 고뇌와 절망을 감안하여 향후의 발전 가능성이라는 관점에서 쇼펜하우어 필경사를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쇼펜하우어 필경사역시 수사적 완성도의 미흡함을 드러내고 있으나 앞으로 각고의 정진을 통해 문체를 획득하게 된다면, 오히려 이런 약점을 자신만의 시학을 구축하는 장점으로 전환시킬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갖게 하는 특유의 힘 있는 시적 언술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높이 산 것이다.


 

심사위원본심: 엄원태조용미(시인), 예심: 안상학김이듬(시인)

 

김지명 시인


▷ 서울 출생

▷ 서울과학기술대 대학원 수료

▷ 2013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이메일주소 : jihill88@daum.net


당선 소감 및 심사평 출처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68078&yy=2012#axzz3K3rllCJ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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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서울신문] 김준현 시인

Posted 2014. 11. 25. 11:39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이끼의 시간



우물 위로 귀 몇 개가 떠다닌다


검은 비닐봉지 속에 느린 허공이 담겨 있다 나는

내 빈 얼굴을 바라본다 눈을 감거나

뜨거나, 닫아놓은 창이다


녹슨 현악기의 뼈를 꺾어 왔다 우물이 입을 벌리고


벽에는 수염이 거뭇하다 사춘기라면

젖은 눈으로

기타의 냄새나는 구멍을 더듬는, 장마철이다


손가락 몇 개로 높아지는 빗소리를 누른다 저 먼 곳에서

핏줄이 서는 그의 목젖, 거친


수염을 민다

드러나는 싹이여, 자라지 마라

벌레들이 털 많은 다리로 밤에서

새벽까지 더듬어 오른다

나는 잠든 그의 뒷주머니에

시린 손을 숨긴다 부드럽고 가장 어두운


비닐봉지 안에 차가운 달걀 몇 개를 담아

바람에 밀려가는 주소를 찾는다


귀들이 다 가라앉은 물에도

소름이 돋는 중이다



[당선 소감] "더 정갈한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어릴 때, 저녁이면 부모님은 저와 동생에게 과일을 깎아 주셨습니다. 지켜보며, 사과껍질을 끊기지 않게 깎는 법을 배우고 싶었죠. 그러나 손놀림이 서툴렀던 저는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생각하면, 한 번도 긴 곡선의 껍질을 남긴 적이 없었던, 제 사과.

 

서툴렀던 건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병아리를 길렀던 적이 있었죠. 어쩌다 다리를 다친, 이름도 잊어버린 그 병아리 역시 제 서투른 사육의 증거였습니다. 베란다의 사과박스 속 홀로, 한 쪽 다리로 서 있던 병아리를 보며 저는 쓸쓸이라는 감정을 배웠습니다. 의무처럼, 저는 병아리의 배설물이 묻은 신문지를 갈아주었습니다. 오래된 신문지와 새 신문지의 날짜 사이 점점 간격이 벌어지던 어느 날, 병아리는 눈을 감고 있더군요.

 

방에서 홀로 쓰다가 그렇게 지칠 때면 저는 밝고 따뜻한 집으로 돌아갑니다. 늘 믿고 기다려주신 아버지, 어머니, 동생에게- 늘 사랑하고 고맙습니다.

 

문학을, 사람을 대하는 자세를 몸소 보여주시고, 늘 제 서투른 감각들을 짚어주시는 김문주 교수님. 감사합니다, 그 이상의 인사는 좋은 작품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더불어 영남대 국문과의 교수님들, 제가 지나온 모든 선생님들과 친구들, 특히 승협, 명재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정끝별 손택수 두 심사위원께는 더 정갈한 소리로 보답을 드리겠습니다. 오래 가라앉고자 합니다


[심사평] "따로 없는 쓰는 법모험에 박수를"

 


추사에 따르면, 묵죽을 그리는 데는 법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법이 따로 없는 것도 아니다. ‘따로 있는 법을 성실히 참조하면서도 과감히 떨쳐버리고 어떻게 따로 없는 법을 찾아나설 것인가. 신춘문예 시 부문 심사는 모험을 향해 떠난 외롭고 고단한 열정들과의 뜨거운 만남의 자리였다.

 

꼼꼼하고 균형 잡힌 예심을 거쳐 올라온 총 20여명의 작품 중 최종심에 오른 것은 새라는 가능성’, ‘고동의 길’, ‘만찬’, ‘이끼의 시간등 모두 네 편이었다. 예리하게 벼린 언어 감각이 돋보이는 새라는 가능성은 높은 시적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기시감이 있었다. , 새장, 온도, 울음, 바람 등 선택된 오브제들과 그 엮음의 방식이 표절 시비로 이미 당선 취소된 바 있는 작품들과 유사해 또 다른 표절 시비를 몰고 올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 하에 가장 먼저 제외되었다. ‘만찬노을에도 마블링이 있다/ 칼이 허공의 날개처럼 살 사이를 휘젓는다와 같은 감각적인 언술에 호소력이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과잉된 수사욕망을 절제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고동의 길이끼의 시간이었다. ‘고동의 길은 수많은 시 창작론의 정석이라고 해도 될 만큼 균형 잡힌 구조와 투박한 시어들을 장악해 들어가는 사유의 힘이 돌올했다.

 

반면에 미성년의 실존적 내면을 다룬 이끼의 시간은 우물, 검은 비밀봉지, 현악기(기타) 등으로 변주를 거듭하는 은유와 신경증적인 감각들로 이미지와 이미지, 의미와 의미 사이의 연결고리가 불안으로 술렁였다. 동봉한 작품들 또한 같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하지만 이 불안은 그 무엇도 결정되지 않는 혼돈 속에서 돋아나는 새로운 가능성의 감각과 열기로 꽉 차 있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완숙한 포도주의 맛과 아직 미숙하긴 하되 미래를 잠재한 떫은 포도주의 맛 사이에서 장고 끝에 심사위원들은 따로 없는 법을 찾아나선 자의 모험에 손을 들어주기로 하였다. 새로운 시인의 탄생에 매운 채찍과 응원을 함께 보낸다.

 

심사위원) 정끝별·손택수


김준현 시인


▷ 1987년 경북 포항 출생

▷ 영남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 영남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 재학중


이메일주소 : kjh165@hanmail.net


당선소감 및 심사평 출처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30101037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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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조선일보] 김재현 시인

Posted 2014. 11. 25. 11:25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손톱 깎는 날

 


우주는 뒷덜미만이 환하다, 기상청은 흐림

구름 사이로 드문드문 쏟아지는 빛 속에는

태양이 아닌, 몇 억 광년쯤 떨어진 곳의 소식도 있을 것이다

입가에 묻은 크림 자국처럼 구름은 흩어져 있다

기상청은 거짓, 오늘

나는 천 원짜리 손톱깎이 하나를 살 것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내 손톱은 단단했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나의 바깥이었다

어릴 적부터 손톱에 관해선

그것을 잘라내는 법만을 배웠다

화초를 몸처럼 기르는 어머니를 보고 자랐지만

나는 손톱에 물을 주거나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주는 일 따위에 대해선 상상할 수 없었다

결국 그것은 문제아거나 모범생이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과 같았지만

나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만 모범이었으며 문제였을 뿐

그러므로 손톱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나 또한 그것의 바깥에 불과하다

 

오늘, 우주의 뒷덜미가 내내 환하다

당신은 매니큐어로 손톱을 덮으려 하고 나는 손톱을 깎는다

우리는 예의를 위해 버리고, 욕망을 위해 남기지만

동시에 손가락 위에 두껍게 자라는 것들이

어느 쪽에 가까운지 알 수 없다

다만 휴지 속으로 던져둔 손톱들과, 날씨

그리고 나에 대해서만 생각할 뿐

버려진 손톱들은 언제나 희미하게 웃고 있다



[신작시]


설일



구름 위에 도착한 영혼들이

쓸모없어진 날개를 떼어내고 있다

손바닥에 앉은 깃털이

죽은 이의 체온을 전하며 녹는다


하설하설下雪下雪

떨어지는


주인 잃은 개가

눈을 향해 컹컹 지는다

자꾸 오려는

누군가가 있다는 듯이


어깨는 기억의 가공공장 같은 머리를 언제까지 짊어지고 있을 것 같고


견뎌낼 수 없다고 말한다면 이미

그걸 견디고 있다는 말이다


어제 입은 검은 외투에게는

어제의 체온이 없다

너를 껴안고 운

오늘의 대가를 정산한다


달력이라는 계좌의 안쪽으로

내일을 살 용기가 이체된다



당선 소감)  "아이처럼 엉엉 울었습니다, 자꾸만 새로워지겠습니다"

 



찌개가 끓고 있는 밥집에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텅텅 비어 있던 배 속이 밥알 대신 알 수 없는 감정들로 차올랐습니다. 먹지 않아도 배부를 수가 있구나. 우습지만, 당선 연락을 받고 처음 깨달은 게 그것입니다. 연락을 받은 친구들이 달려와 볼에다 마구 뽀뽀를 해댔습니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였고 금세 두려움이 차올랐습니다. 제가 그동안 무엇을 써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습니다. 훈련을 마치고 첫 전장에 나가는 병사의 심정이 이랬을까요.

 

시인이 된다는 것과 시인이 되고 싶은 것 사이에 이토록 깊은 거리가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간밤의 꿈에서 누군가에게 사과를 했고 그는 받아주지 않고 그냥 돌아섰습니다. 그가 시였을까요. 꿈에서 깨어난 후, 나는 아직 텅 비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실은, 시 쓰기에 방점을 찍는다는 생각으로 투고했던 글이었습니다. 그 방점이 새로운 문장을 쓰기 위한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놓으면 온다는 이치를 알 것 같습니다. 이제 이 길을 숙명이라 믿고 묵묵히 걸어가겠습니다.

 

제 가능성을 봐주신 심사위원분들께 우선 감사드립니다. 부끄럽지 않게 써나가겠습니다. 끝까지 저를 놓지 않으셨던 박주택 선생님, 김종회 선생님, 서하진 선생님. 평생을 다해도 갚을 수 없는, 너무나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처음으로 시의 길을 알려주셨던 정우영 선생님. 항상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격려와 확신을 주었던 이체, 강진, 동운. 주모동의 단테. 문예창작단의 선후배들. 당신들이 제게는 써야 하는 이유들이었습니다. 고향 친구들인 용준, 한상, 지홍, 경록, 정훈. 내일도 오늘처럼 끈끈하게 살아갑시다. 지금은 이름을 부르기 힘든, 하지만 언젠가 나를 용서해주길 바라는 그에게도 하고픈 말이 있습니다. 절망과 방황을, 성장과 배움을 당신을 통해 겪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를 나 자신보다 아껴주는 금희와 부모님에게 진심을 담은 사랑을 전합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는데, 갓 태어난 기분입니다. 집에 돌아가 아이처럼 울었습니다. 자꾸만 새로워지겠습니다. 



[심사평] "삶의 구체성을 통한 사유 그것을 언어화하는 능력 돋보여"



어느 해보다 많은 응모작을 보며 새롭고 다양한 개성과 시세계에 대한 기대 또한 더욱 높았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시 가운데 이소연의 활과 무사, 노정균의 우산은 어디서 파나요?’ , 김재현의 손톱 깎는 날외로 의견이 좁혀졌다. 이 세 사람의 작품은 우선 언어 장인으로서의 기량과 그것을 삶의 지렛대로 끌고 가려는 진정성이 돋보였다. 최근 한국시에서 자주 지적되는 산문화, 언어 낭비, 소통의 문제도 비교적 잘 극복해 가고 있었다.

 

이소연은 활과 무사’ ‘늑골이 빛나는 발레 교습등의 작품을 통하여 감각적 투시, 대담한 언어 구사로 산뜻함을 드러내었고, 노정균은 우산은 어디서 파나요?’입양을 통하여 우리말의 어미를 .”로 끝내지 않고 이어지는 각운을 통하여 사유가 리듬을 불러오는 작법의 시도를 보여주었다.

 

논의를 거듭한 끝에 김재현의 손톱 깎는 날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삶의 구체성을 통한 사유, 그것을 언어화하는 능력과 밀도를 주목했다. 함께 응모한 다른 작품들 또한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신뢰를 보탰다. 뱀처럼 섬뜩한 이미지의 아야와스키의 시간’, 태어날 것들을 위해 스스로를 앓아 주렁주렁 매달린 몰식자(沒食子)’에서 예사롭지 않은 재능을 보았다. 하지만 미개척지를 향한 탐색과 언어 실험자로서의 패기가 지나쳐서 억지스러운 조어가 이물(異物)처럼 박혀 있는 것이 다소 눈에 거슬렸다. 시란 사물과 사유를 언어로 갈고 닦아 가장 명징하게 본질을 드러내는 생명체이다. 삶의 타성과 시류와 진부에로의 수압을 잘 견뎌내어 부디 좋은 시인으로 훨훨 날아오르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조정권·문정희


김재현 시인


▷1989년 거창 출생

▷경희대학교 국문과 재학중


이메일주소 : astronomer99@naver.com


당선소감 및 심사평 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2/31/201212310099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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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한국경제] 김기주 시인

Posted 2014. 11. 21. 16:30
[한국경제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화병


절간 소반 위에 놓여 있는
금이 간 화병에서
물이 새어 나온다
물을 더 부어 봐도
화병을 쥐고 흔들어 봐도
물은 천천히, 이게
꽃이 피는 속도라는 듯
조용하게 흘러나온다
아무 일 없는 외진 방 안
잠시 핀 꽃잎을 바라보느라

탁자 위에 생긴 작은 웅덩이를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꽃잎보다 키를 낮출 수 없는지

뿌리를 보려 하지 않았다


한쪽 귀퉁이가 닳은 색 바랜 소반만이

길 잃은 물방울들을 돕고 있었다

서로 붙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물방울들에게,

가두지 않고도 높이를 갖는 법을

모나지 않게 모이게 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무릎보다 낮은 곳

달빛 같은 동자승의 얼굴이

오래도 머물다 간다



[당선작과 같이 투고한 시]


내가 내 속의 나보다 겉에 있다



길을 가다 차에 치인 개가 보였어

차들이 밟지 않으려고 바퀴 사이로 저 개를 흘려보낸다는 게 너무 괘씸해서

차를 세우고 개를 잡았어

따뜻하더라 겁이 났어 완전히 죽지 않았을까봐

아프다고 신음할 걸 볼 자신이 없었어

이걸 다행이라고 할까, 개는 따뜻하게 죽었더라

마지막 열을 온 힘으로 내고 있었어

사람들이 잘 안 보이는 화단에 개를 올려놓고

난 내 갈 길 가려는데,

저 죽은 개를 아무도 보고 싶지 않을 거야

죽음을 보인다는 게 부끄러운 게 돼버리는 이런 개 같은 경우

봉투를 구해서 죽음을 담고 산에 올라갔어

죽음이라는 거, 꽤 무겁더라

있잖아 개를 묻는 게 불법이래

개를 담는 봉투에 담아서 버려야 한다더라고

나는 지금 불법을 저지른 범죄자야

어제 눈이 와서 산엔 곳곳에 눈이 녹지 않았던데

따뜻한 죽음이 언 땅을 녹이더라

산을 내려오는 발자국이 크게 들리기 시작했어

비둘기가 나는 것도 고양이가 앉아 있는 것도

진돗개가 짖어대는 것도 참 대단한 사건이더라

개를 묻었는데

차가운 내 두 눈이 거기 묻혀 있었어




당선 소감 ) "모른 척 걸어가듯 시 쓰겠다"

 




시는 결코 대단하지 않다. 하지만 대단한 것 또한 아무것도 없다.’

 

다 솔직할 수는 없습니다. 이 글도 마찬가지. 아직도 사람을 알려면 오백년은, 사랑을 하려면 천년은 걸릴 거라고 믿습니다. 모른 채 태어나 모른 척 걷는 게 유일한 특기인 셈입니다.

 

하늘이 참 좋은 날. 은대 원준 영수 인태랑 사막에다가 오줌을 휘갈기고 싶은 것이 꿈입니다.

 

박찬일 선생님과 이형우 교수님, 이성혁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보다 더 기뻐해준 추계예대 동문들, 유정이 삼겹살 때문에 우리 많이도 웃었습니다. 승빈이의 지조와 그대들의 밝음에 감사합니다.

 

하이네 시집을 들고 웃는 어느 여인에 비하면 한없이 부족한 자격이지만, 역시나 침묵은 압제자를 돕는 것. 그만큼은 글을 쓰겠습니다.



심사평 ) "여백과 침묵으로 상상력 확장한 수작"


 

 

청년신춘이라는 말에는 지금도 활발하게 형성되고 있는, 굳어지지 않아서 무정형인, 무엇으로 변화할지 모르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직 자연 상태 그대로의 어린이가 살아있는 비밀스러운 힘이 있다.

 

선자들은 될 수 있는 대로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기성세대의 잣대로 가공되지 않은, 드러난 것보다는 앞으로 드러날 탄력이 더 풍부한 작품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심사에 임했다.

 

물론 응모작에는 서툴고 거칠고 어눌한 말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것은 결함이라기보다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새로움을 한껏 내장하고 있는 가능성으로 보였다.

 

선자들의 이런 마음을 향해 한 작품이 걸어 들어왔다. 모두가 망설이지 않고 당선작으로 결정한 그 작품은 김기주의 화병이다.

 

이 작품은 조금도 화려하지 않고 신춘문예에 어울리지 않게 평범하고 어눌해 보인다.

 

그러나 대상의 작은 것까지 낚아채는 관찰은 섬세하고 정확하며, 묘사는 끈질기고, 표현에는 집중력과 응집력이 있으며, 어조는 차분한 정도를 넘어 무심할 정도로 건조하다.

 

당선자는 말을 적게 하면서 행간의 여백과 침묵을 한껏 활용해 시를 힘 있게 만들 줄 아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말을 덜함으로써 독자의 상상력을 확장하는 법을 알고 있다.

 

함께 투고한 내가 내 속의 나보다 겉에 있다역시 죽음에 대한 블랙 유머가 돋보이는 수작이다. 이 작품들을 보며 당선자에게 아직 쓰지 않은 더 크고 풍부한 것들이 있으리라는 믿음과 기대를 갖게 됐다. ‘청년신춘에 어울리는 참신한 신인을 한경 청년신춘문예의 첫 당선자로 내보내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이소연의 나를 기포의 방에와 강산하의 티베트 노인들의 합창은 당선작과 마지막까지 겨뤘으나 당선의 문턱을 넘지는 못했다. 앞의 작품은 이미지가 발랄하고 신선하지만 일부러 꾸민 것 같은 작법이 거슬렸고, 뒤의 작품은 성실한 관찰과 재미있는 모순어법이 돋보였지만 성장을 위한 습작 기간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됐다.

 

심사위원) 신경림·최승호·김기택



김기주 시인


1983년 부산 출생

제주관광대 카지노경영학과 졸업

추계예대 문예창작과 4학년


이메일 주소 : kj6794@hanmail.net


당선 소감 및 심사평 출처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2123173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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